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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중/사진

김현중, 달콤한 쉼표 (마리클레르 12월호)


출처 - http://www.marieclairekorea.com/lifestyle/contents.asp?channel=228&subChannel=229&idx=5198&page=1

김현중은 푹신한 소파 위에 마르고 반듯한 몸을 누였다. 백일몽에 잠긴 것처럼 두 눈을 지긋이 감았고, 이내 꿈속에 깊숙이 침잠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는 주어진 1분을 마치 한 시간처럼 귀하게 즐겼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조금은 느슨한 휴식이다.



김현중은 조용히 침묵하는 타입이다. 힘들 때조차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짜증을 쏟아내는 타입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물론 이 지극히 사적인 편견은 <우리 결혼했어요> 속의 꼬마 신랑을 토대로 유추한 것이다. 모든 게 짜고 치는 버라이어티 쇼라고는 하나, 어떤 사람도 24시간 오픈된 카메라 앞에서 완벽하게 자신을 속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베일에 곱게 가려진 연예인이라고 해도 이 리얼함을 비켜갈 수는 없다. 순간순간 벌어지는 날것 그대로의 상황극 안에서 본능을 숨기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리얼 버라이어티 쇼 속의 김현중은 엉뚱했지만, 현명하고 귀여웠다. 또 아무 말이나 쉽게 건넬 수 없는 서늘함이 있었다.




그즈음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던 ‘4차원 김현중’이라는 인터넷 기사의 제목이 실제 김현중과 싱크로율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는 모르겠다는 말이다. 마구잡이로 예능 프로그램을 휘저으며 후끈 달구어놓은 뒤 다음 날 검색어 1위에 이름을 올리는 요란함은 없었지만 꼭 필요한 순간에는 독보적인 존재로 그저 ‘김현중’을 각인시키는 명민함. 늘 그렇듯 자신에게 주어진 캐릭터를 완벽하게 뒤집어썼을 뿐이겠지만, 결과는 놀랍도록 우수했다.





그는 아주 월등한 기량을 가진 우량주다. 가수가 연기자로 나서는 게 잠깐의 외도로 비치는 시기가 지난 지 한참 됐지만 ‘지후 선배’의 따뜻함은 <꽃보다 남자>에서 그가 보여주던 미소만큼이나 고급스럽고 자연스럽게 김현중에게 연기자라는 수식어를 달아주었다. 뒤이은 SS501의 활동 반경은 넓어졌다. 일본을 넘어 아시아의 별이 되었고, <장난스런 키스>의 백승조는 김현중 원 톱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물론 SS501 다섯 멤버의 각기 다른 소속사가 정해지면서 해체설을 비롯한 솔로 데뷔설이 난무했지만, 언제나처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명쾌한 결론을 내보였다. 욕심을 이기지 못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는 걸 김현중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4개월을 움직인 <장난스런 키스>의 백승조. 일찍이 가상 캐스팅으로 후끈 달아오를 만큼 확실한 카드였던 백승조는 결국 김현중 차지였다. 순정만화 속 주인공이 그렇듯이 비현실적으로 완벽한 외모는 김현중과 더없이 잘 맞아떨어진다. 겉으로 까칠하고 속으로 사랑할 줄 아는 매력적인 캐릭터에 이만큼 부합되는 인물도 없다. 슬쩍 미소만 지어 보여도 무수히 많은 여자들이 호흡을 삼키게 만드는 김현중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드라마 시청률의 조금 더딘 출발은 마지막까지 속도를 낼 줄 몰랐다. 이름값에 기대지 못한 드라마라는 수근거림도 있었다. 그러나 분량도 많고 대사도 어마어마한 미니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으로 나선 그의 ‘연기력 부재’에 대한 논란은 없었다. 분명 시청률엔 거짓이 없었지만 또한 김현중의 본격적인 연기자 행보에도 거짓은 없었다. 그는 거품으로 둘러싸인 불필요한 것들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낼 줄 아는 단단함을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꽃보다 남자> 이후 그의 위치는 달라졌고, <장난스러운 키스>의 주인공이 가진 달달함은 새삼 그의 초심을 흩트려놓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여느 배우처럼 다음은 좀 더 확대된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싶었지만 김현중은 보란 듯이 노래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가수 김현중으로서의 컴백. 그것도 한국 대표로 광저우 아시안 게임의 개막식 초청 가수로 초대됐다.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10분짜리 유튜브 번외편을 7편이나 찍었고, 대기표를 받아두었던 광고 촬영으로 낮밤이 뒤바뀌는 스케줄을 소화하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아시안 게임에서 부를 ‘Sunshine Again’의 중국어 노랫말도 외워야 했고 녹음을 위해 미리 중국에 다녀오기도 했다. 체할 것처럼 몰아닥치는 스케줄의 반복이었다. 체력의 한계에서 드러나는 날카로움이 감정의 평화를 위협해오는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질량 변화가 거의 없는 그의 감정이 흘러넘치지는 않을지 걱정도 됐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상처의 치유 방식이 다르듯이 그는 일을 즐기는 것으로 풀어내는 것 같다.






아니면 아직은 브레이크를 당길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한창때인 스물다섯인 것이다. 스카파 어워드 시상식차 머무른 일본에서의 2박 3일, 그리고 3시간 반 동안의 비행으로 도착한 광저우에서의 1박 2일. 틈틈이, 그리고 찬찬히 김현중을 뜯어보았다. 개막식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귀에 이어폰을 꽂고 ‘Sunshine Again’의 가사를 반복해서 들었다. 그는 매 순간 집중했고, 스태프들 사이에 섞여 가볍게 웃는 시간에도 진지했다. 김현중은 현재의 자신을 충분히 즐기는 중이다. 우리가 이름값에 대한 부담감을 지워 그를 흔들어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김민경기자님